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어도어 루스벨트 (문단 편집) === 부통령이 되기 전까지 === [[맨해튼]]의 상류 가정에서 태어나서 대단히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는데, 어린 시절에는 심한 [[천식]]으로 고생했고 시력도 지독한 [[근시]]였으며[* 덕분에 미국 대통령 중 윌슨, 트루먼 등과 더불어 안경을 쓴 모습이 돋보인 대통령이기도 하다. 참고로 이 둘도 시어도어처럼 어린 시절부터 안경을 썼다.] 뚱보 소리 듣기도 한 성인이 된 후의 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어릴 땐 말라깽이였다고 한다. 때문인지 요양을 갔다가 요양간 동네의 힘센 아이들에게 몰매를 맞은 적도 있다고. 그러다 12세가 되자 아버지가 "너는 정신력은 강한데 몸이 약하다. 근데 몸이 약하면 정신도 제 능력을 다 발휘 못하니까 앞으로 체력 단련에 힘써라."하고 말한 이후로 매일매일 몸을 단련하여 건강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. 루스벨트가 가장 좋아한 스포츠는 사냥이었다. 은퇴 후 [[아프리카]] 여행을 할 때는 [[사자]], [[코뿔소]] 등을 원없이 잡고 다녔었다. 잡은 동물들을 앞에 놓고 당당하게 찍은 사진도 많이 있다. 어쨌든 허약한 몸을 극복하고 [[하버드]]에 들어가서 최상위권에 드는 성적[* 당시 하버드에서는 평균 성적이 C일 정도로 평균 학점 및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, 이런 상황에서 루스벨트는 A+의 매우 높은 성적으로 하버드를 졸업한다.]으로 학부를 졸업했고, [[컬럼비아 대학교]] 로스쿨에 진학했으나 1년 뒤 중퇴하고 공화당에 입당해서 1882년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[[뉴욕]] 주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다. 그러나 1884년 그의 아내와 어머니를 2월 14일에 같은 집에서 한꺼번에 각기 다른 병으로 잃는 불행을 겪었다. 이에 충격을 받고 아내가 낳은 딸을 여동생에게 맡기고 [[노스다코타]]로[* 그곳을 나중에 미국 국립공원청에서 대통령의 이름을 딴 국립공원으로 지정을 해놓았다] 가서 3년 남짓 [[카우보이]]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. 이때의 경력으로 후에 정적들에게 종종 "빌어먹을 카우보이!"라고 불리기도 한다. 재혼한 후 뉴욕 [[시장(공무원)|시장]]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고 잡지 기사를 쓰고, 책을 저술하는 데에 전념했다. 그는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책을 저술한 인물로, 그가 저술하고 출판한 책은 무려 38권에 이른다. 이후 1888년 [[벤저민 해리슨]] 대통령에 의해서 미국시민봉사위원회에 임명되었고 7년 뒤인 1895년 뉴욕 경찰국장으로 임명되어 다시 뉴욕에 돌아왔다. [[파일:external/4.bp.blogspot.com/theodore-roosevelt.jpg]] [[파일:external/www.theodore-roosevelt.com/soldierpic56.jpg|width=50%]] 러프 라이더 [[기병]]대장 시절의 루스벨트. 그러나 이 그림은 당시 모습을 제대로 담아낸 것은 아니다. 명칭과 달리 루스벨트의 러프 라이더스는 거의 [[보병]]으로 싸워야 했다. 1897년 [[윌리엄 매킨리]] 정부의 해군 차관보가 되었다. 그가 차관보가 된지 얼마 안 된 1898년 [[쿠바]]를 둘러싸고 [[미국-스페인 전쟁]](미서 전쟁)이 터지게 된다.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스페인과의 전쟁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그는 마침내 전쟁이 발발하자 해군 차관보를 그만두고 스스로 의용군 '러프 라이더(Rough Riders - 거친 기수들)'를 조직하여 전쟁에 참전, 공적을 세우고 전쟁영웅이 되었다.[* 먼 훗날 그가 취임한지 100년이 되는 2001년 1월 16일, [[빌 클린턴]] 당시 대통령은 이때의 공으로 루스벨트에게 [[명예 훈장]]을 추서했는데, 이로써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명예훈장을 가진 대통령이 되었다.] 비록 그는 정규 군인이 아니었지만 전쟁 말 그의 공로가 인정되어 특별히 미 육군 대령으로 임관되었다. 다만 객관적으로 볼 때 [[미국-스페인 전쟁]]에서의 그의 공적은 과장된 면이 많았다. 그가 빛을 발휘한 산후안 고지 전투 때는 러프 라이더보다 [[흑인]] 보병들이 앞장서서 싸우고 피해를 제일 많이 보았다. 오히려 미군의 10분의 1밖에 안 됐던 [[스페인]]군들이 가망도 없는 상황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한 경우가 더 많았다. 그리고 앞서 말한 흑인 부대에서 용맹히 전사한 이들은 루스벨트가 있었던 곳보다 더 위험한 곳에서 싸웠지만 정작 훈장은 못 받은 경우가 더 많았다. 또한 그의 군대는 공식적인 정규군이 아니었는데, 정규 미군의 작전 명령을 무시하면서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하여 문제가 되기도 했다. 부유한 집안 출신의 엘리트가 직접 전쟁에 나섰기 때문에 미디어에 의해 과대포장되어 이득을 본 셈이라는 것. 여담으로 이와 유사한 문제는 케네디 대통령한테도 일부 제기된다. 1898년 [[미국-스페인 전쟁]](미서 전쟁)이 끝난 후, 전쟁에서의 명성을 바탕으로 그해 말 치러진 뉴욕 주지사 선거에 당선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